어떤 식으로든 그 관계의 변화를 위한 계기가 필요한 듯하다. 그 계기는 의도해서 만들 수도 있고, 억지로 끌려가듯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 저자의 경우는 그 중간 즈음에 머무른 마음으로 시작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아흔의 노모를 병간호하면서 보낸 시간이, 어머니의 사랑이 서운하다 여겼던 마음을 다독인다. 그가 2년 동안 써내려간 글이 많은 사람의 가슴 속에 자리하는 시간을 만들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일찍 남편을 잃고 홀로 네 명의 아이를 키워낸 어머니다. 큰아들과 작은아들을 편애했다던 어머니였다니, 저자와 동생에게는 어머니의 부족한 사랑이 상처로 남았을 터. 어머니를 미워하는 마음이 쌓였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가 의식을 잃고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이 되자, 어머니 곁에는 그 사랑의 결핍으로 상처받은 저자만이 있었다. 그렇게 그의 병간호가 시작된다. 뇌가 쪼그라드는 어머니는 기억이 불안하고 사람을 몰라보는 경우도 많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아기 천사 같고, 어떤 날은 욕쟁이 할머니가 되기도 하는 어머니. 병원과 요양시설에 의지해 어머니를 돌보는 마음은 편하지 않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틈나는 대로 어머니를 보러 가고,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더 좋은 환경에서 지내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어떤 곳에 계시든지 어머니의 마음이 더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지낼 공간이라는 게 중요하다는 걸 잊지 않는다.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다른 요양시설을 알아보고, 어머니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한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오래된 사진첩을 보여주며 기억을 더듬게 하고, 이보다 더할 수 없이 다정한 아들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동안 어머니와 그의 거리는 참 멀었는데, 어머니의 병으로 아들은 어머니와의 거리를 확 좁힌다. 누군가를 이해하며 화해하는 과정이 이뤄진다. 참, 투박한 말투로 들리는데도, 그의 진심인 걸 알겠다. 아기 같은 어머니가 마냥 사랑스러워지는 순간을 두 눈에 담아내는 그의 웃음이 그려진다. 아, 우리 어머니, 이렇게 예쁘네...아흔의 노모에게 뽀뽀로 인사하는 아들을 상상해보라. 웃음이 나면서도 애틋해진다. 그 순간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까. 기억이 왔다 갔다 하는 어머니의 온갖 감정을 다 받아들여야 했고, 어머니의 진심이 묻어나는 말을 들을 때면 간절해지기도 했을 테지. 모든 것을 수용하고 인정해야만 지금의 어머니를 더 사랑할 수 있을 거라는 걸, 행복해질 시간이라는 걸 알기에 있는 그대로 지금 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이제야 어머니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 듯하다. 어머니의 병세가 호전되어 기쁜 마음에, 그 소식을 여러 사람에게 전하면서 시작한 기록이 쌓여 한권의 책이 되었다. 책으로 그 완결을 이루기 전에, 이미 그 기록의 시간 동안 저자에게 다가온 감정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어머니의 진심과 사랑을 알게 되었을 거고, 어머니와의 관계 회복에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확인했을 테다. 힘들게 살아온 그때 자식들의 보호자였던 어머니를, 이제는 그가 보호자가 되어 어머니를 보살피는 일이 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맘을 돌아보고, 그 대상을 향한 감정이 누그러지기를 바라면서 이해로 화해를 가능하게 하는... 저자는 어머니와의 시간으로 그 모든 것을 이뤄낸 듯하다. 이해와 화해, 받아들이면서 더 가까워지고 고마워지는 일들. 그렇게 어머니의 아흔 번째 봄을 같이 하고, 아흔한 번, 아흔두 번… 계속 이어질 봄을 기다리는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내 엄마 찾기 는 요컨대 화해 의 과정이었다.
마음으로 그리고, 머리로 써 내려간 아흔 노모 시병일기.
역사학자 김기협이 아흔의 치매 노모를 간병하며 쓴 일기를 엮었다. 역사학자였던 故김성칠 선생(부친)과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였던 이남덕 선생(모친)의 아들인 저자 김기협은 3년여 동안 노모를 간병하며 가까이에서 바라본 어머니의 모습을 사랑으로 써내려갔다. 한 아들의 어머니 간병기 라는 모습으로 세상에 나온 이 책은 개인의 기록 이면에 우리가 지나온 파란만장한 과거와, 가족이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랑과 소통, 화해의 과정들을 담아낸 우리 모두의 역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의 이쪽과 저쪽을 오가면서 어머니는 아들 놀려먹는 재미에 푹 빠지기도 하고, 기억력이 떨어졌다는 좌절감에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과거에는 하지 못했던 마음 속 말을 스스럼없이 건네거나 유쾌하게 주변을 웃게 만들기도 한다. 어머니에게 쉽게 진심을 내보이지 못했던 아들, 고통스러운 기억도 홀로 끌어안고 견뎌야 했던 어머니는 이제 지난 시간의 아픔을 내려놓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사랑을 이야기한다. 모자의 갈등과 화해의 시간을 꼼꼼하게 기록해낸 이 책은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가까운 사람과의 소중한 인연을 다시 다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엄마 찾아 60년_김기협
1/ 찬란한 순간
2/ 아흔 개의 봄을 생각하다
3/ 꽃은 어디에 피어도 예쁜 거예요
4/ 이젠 노래나 부르고 살겠어
5/ 햇볕을, 바람을, 꽃을, 풀잎을,
모자간의 내면적 오디세이_강인숙(영인문학관 관장)
다음 생애에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_남지심(소설가)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서, 선생님!_이문숙(제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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