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이 공포와 저주로 변질된 역사, ‘저주의 몫’이 된 섹스의 뿌리 찾기이다. 욕망과 공포가 분리되고 또한 사랑과 섹스가 분리되기 시작한 고대 로마의 공화정이 제국으로 변모하는 바로 아우구스투스로부터 시작되는 성의 정치화와 권력화, 그리고 금기라는 규범화가 낳은 문명사적 고찰을 통해 성의 기원에 대한 풍성한 해석의 터전을 마련하고 있다. ‘미셸 푸코’가 말하는 성의 정치화에 고착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의 또 다른 판본이 될 수 있으며, ‘조르주 바타이유’의 죽음과 동일시하는 에로티즘의 이해, 즉 비생산적 소비로서의 섹스와 비견되는 언어학적 논증을 통한 공포와 섹스의 동일 기원에 대한 해석은 오늘의 우리와 우리사회를 이해하는 새로운 인식의 토대를 제공한다.
이와 더불어,‘파스칼 키냐르’의 이 저술은 그의 사상과 삶에 대한 관점 및 작품들(특히,『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이나 『은밀한 생』등)을 이해하는 기본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할 정도로 총 16개장(章)에 걸친 신화적, 미학적인 성의 문화사적 성찰은 가히 독보적이고도 귀중한 문헌학적 가치를 지닌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는 물론, ‘아플레이우스’의 『변신』이나,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비롯한 접하기 힘든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무수한 작가들의 서사시와 회화들의 해석은 매료될 수밖에 없는 독서의 즐거움을 준다.
매혹(fascinatio), 파스키누스(fascinus)와 직면한 죽음
로마의 제국화, 즉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의 권력독점에 따라 귀족들이 자발적으로 예속적 관리가 되는 것은 문화적 대변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성 문화에 있어서도 그대로 실현되고 접목된다. 여성의 성에 대한 억압으로 혼인한 여성, 과부의 매력 발산이나 하다못해 강간조차도 피해자인 이들 여성을 처벌하는 까다롭고 엄격한 시민남성 중심의 비상호적 성규범으로 변화한다. 고대 그리스의 영혼과 육체의 통일체로서의 인식은 분리되어 육체는 평가절하되고, 특히 매혹에 대한 여성의 좌절은 욕망과 공포를 분리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도시민들의 음담패설과 통음난무는 자유분방이라 할 정도로 로마에 넘쳐났는데 이는“남성성의 약화를 방지하려는 의례”의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외설스런 언어, 남근의 지배라는 권력은“능동적 힘, 태내의 번식력, 다른 국가들에 대한 승리의 힘”을 상징했고 로마인들의 이러한 영웅주의는 훌륭한 죽음이라는 강박관념으로 표출되어, 원형경기장의 잔악한 죽음 앞에 선 노예들, 화가들의 벽화에 그려진‘직면한 죽음’처럼, 죽음의 순간에 매료되어 환호하고 그것을 만끽하는 것으로 형상화 되었다. 이를보면 오늘의 우리사회와 쌍둥이같은 모습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데, 성은 수치스러운 몰가치로 저 심연 뒤로 규범으로 금지하고 감추어 놓고서는 다양한 기호들로 외설과 음란에 도취케하는 현대정치권력의 양면성과 빼 닮은 것이다. 성과 사랑, 욕망과 죽음, 영혼과 육신은 결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분리하면서 모든 죄악과 위선을 뒤집어쓰고 고통스러워하는 인간사회의 모습은 실로 아이러니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한편 로마의 왕들은 베누스와 마르스의 아들인 에로스의 추종자가 되어 스스로 베누스의 아들임을 자처하여 성적능력을 곧 권력과 동일시하는 남근지배, 즉 인간 존재로서 비로소 가능성을 획득하는 존재 이전의 이미지, ‘섹스’, 즉 파스키누스(fascinus: 勃起한 남성)에 대한 매혹에 천착하게 되는데, 여기서 죽음에 직면한 공포에 질린 얼굴 - 인간의 고통을 보며 느끼는 쾌락 - 이 suavitas(감미로움)였음은 그 기원의 동일성을 엿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강직(剛直)에서 매혹(fascionatio)이 출현하는데, 이것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것은 프랑스어 대경실색(meduser), “피해야 할 것에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고 공포 자체를 숭배하게 하며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우리 자신보다 공포를 더 좋아하게 만드”는 무엇이다. 그래서 시선은 마주보지 못하고 언제나 곁눈질이며, 매혹은 언어의 사각지대에 대한 인식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종합하면 로마의 문화적 지표들인 폼페이의 벽화, 서사시에 표현된 직면한 죽음의 광경이나 원형경기장에서 사투(死鬪)의 형태로 연출된 희생이라는 우스꽝스런 죽음, 파스키누스의 풍자적 의례 등은 처벌을 초월한 복수, 위반에 대한 집단적 복수에 참여하는 승리의 시퀀스(sequence)라 할 것이다.
‘신비의 빌라’, 그리고 메두사(medusa)...
키냐르의 모든 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신비의 빌라’는 존재가 있게하는 시원(始原)의 장소이기도 하며, 도시에 환멸이 난 시민들의‘은둔’의 장소이자, 은밀한 쾌락의 공간인 ‘매혹의 침실’,‘매혹의 빌라’이기도 하다. 아마 이 신비의 빌라에는 “천으로 덮여 키 안에 들어 있는 파스키누스를 향해 일제히 집중되어”있는 공포어린 사람들의 표정이 있는 벽화가 있는 모양인데, 이는 매혹을 마주하는, 또는 죽음에 직면한 놀라움, 바로 아연실색케 하는 매혹의 더없는 조합인 것이다.
사실 자연의 풍광이 그지없이 좋은 교외의 빌라라는 곳이라도 매일의 지리멸렬한 반복이다 보면 그것이 무슨 즐거움이겠는가. 아마 삶의 권태라는 태생적인 인간의 질환이 머리를 쳐들어 댈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흥분의 소멸, 위축되고 수축되는 순간, 그것은 분출되는 것의 고갈, 슬픔이라 할 것이다. 결국 남성은 동물적 쾌락 속에서 침몰한다. 그 침몰은 곧 나른한 권태이다. 지루함이다. 상징적 세계의 수축, 삶의 권태, 쓰라린 감정, 로마는 바로 이 불응기를 축소하기 위한 권태와의 전쟁의 역사인 것이다. 무감각해진 오늘의 인간들을 자극하기 위한 리얼리티 쇼같은 광적인 쾌락주의처럼.
신비의 빌라에 있는 돌처럼 단단한 파스키누스를 바라보는 놀라운 표정은 정신을 몽롱하게하고 죽음을 가져오는 에로틱한 시선이다. 바로 머리에 50마리의 뱀이 우글거리고 입을 활짝 벌린 여자의 얼굴을 한 메두사(medusa)가 바로 그것이다. 그녀를 바라보면 모두 돌처럼 굳어 죽어버린다. 황금비로 변한 제우스와 라르고스 왕의 딸인‘다나에’사이에 출생한 아들, ‘페르세우스’가 폭력적이고 성적이고 마법을 걸어오는, 놀라움으로 얼어붙게 만드는 시선의 메두사의 머리를 잘라오기 위해서는 결코 마주볼 수 없는 것이다. 마주보는 것은 곧 죽음이다. 마주보는 시선이 행사 할 수 있는 힘에 대한 두려움,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은 금기이며 이 정면의 파괴적 시선에 대응하는 것이 곁눈질이다. 겁을 내며 수줍게 바라보는 여자의 비스듬한 시선은 바로 페르세우스의 계략이다. 반들반들 거울처럼 닦은 페르세우스의 청동방패에 반사되어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본 메두사의 공포의 경직은 쾌락의 극치인 것이다. 이는 호수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가 아니라 바로“반영(反映)에 잡아먹힌” 나르키소스의‘자기 살해적 시선’, 바로 그것이기도 하다. (*나르키소스 신화의 3가지 판본의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책 본문 참조)
“쾌락은 육체를 우월한 자아로 느끼게 하고 영혼을 신적인 존재로 끌어올린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경험은 오직 쾌락뿐이다. 육체와 영혼의 결합이 이루어지고서야 비로소 삶은 통합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노출을 은폐하고 성과 매혹을 금기시하는 사회는 파괴 불가능한 욕망을 알지 못하고 그 수축의 권태와 쾌락, 죽음을 제거하기 위해 기술적 광란에 집착한다. 권태에 집착하는 사회는 파멸만이 기다리고 있었음을 우린 역사에서 본다.“자신이 생겨난 섹스와 자신이 썩는 죽음의 부패 사이에 놓인 육체를 지니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우수와 더불어 권태와 증오”가 잇따르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인 것을, 인간인 것을 왜 부정하고 회피하려 하는가. “삶은 죽음을 배경으로 반짝이는 빛”이란 것을, 그 매혹의 빛, 설혹 돌처럼 굳어진들 정면으로 마주하는 그 아찔함의 순간적 경련과 경직은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저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 서있는 조각상의 아름다움처럼...
섹스와 공포, 성과 권력, 쾌락과 죽음이 매혹이라는 동일한 기원에서 태어났음을 어원학적으로 그리고, 고대 문헌과 회화를 배경으로 본질을 가려왔던 어둠을 과감하게 걷어내고 선구적인 윤리를 제시 해내는 이 저술은, 에로티즘의 본질을 파헤쳐 우리들이 지닌 왜곡된 선입견을 교정하고 새로운 문명사를 여는 에로티즘 정보의 광산이자 절대 걸작이라 함에 부족함이 없는 대작이라 하겠다.
이 책은 회화를 통해 성의 관점에서 씌여진 인류 문명사 이자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섹스에 관한 연구서이다. 저자는 서양 고대 미술사, 문학사, 사상사를 넘나들며 그리스의 에로티시즘이 고대 로마제국에서 공포에 질린 우수로 변모된 사실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일러두기
서문
제1장 파라시오스와 티베리우스
제2장 로마의 회화
제3장 파스키누스
제4장 페르세우스와 메두사
제5장 로마의 에로티시즘
제6장 페트로니우스와 아우소니우스
제7장 도무스와 빌라
제8장 메데이아
제9장 파시파에와 아풀레이우스
제10장 황소와 다이버
제11장 로마의 우수
제12장 리베르
제13장 나르키소스
제14장 술피키우스와 폼페이의 유적
제15장 신비의 빌라
제16장 권태에서 나태로
옮긴이의 말
작가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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